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양보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곳을 사회라 한다면 그 사회 속의 각자의 양보는 원만한 사회의 기본임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모서리를 없애주는 것이 바로 양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가 약간은 불이익을 보더라도 자기를 뒤로 하고 상대방을 앞세우는 방법을 택한다면 그것이 바로 양보이다.
산양이란 동물이 있다. 산양은 생리적으로 뒷걸음칠 줄을 모른다고 한다. 앞으로만 나갈 줄 알고 뒤로 물러설 줄은 모른다는 뜻이다. 그 산양 두 마리가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쳤다. 앞으로 밖에 나갈줄 모르는 이들의 생리대로라면 둘은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그러나 이때 한 마리는 주저앉고 한 마리는 그를 뛰어 넘는 슬기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두 마리의 산양은 모두 자기 갈 길을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양보라는 말로 표현한다.
교통안전의 기본은 양보다.양보는 마찰을 피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양보운전만 잘 이행 한다면 교통안전은 저절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과속을 하고 추월을 하고 끼어들고 하는 것은 양보 정신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중 30%이상이 이런 행위로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과속경쟁을 하던 두 운전사가 격투를 벌이는가 하면 차로 들이받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한 발짝의 양보로 해결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내 한 복판에서 결투까지 벌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양보로 그칠 수 있는 일이지만 두 사람의 주장이 똑 같다면 해결의 실마리는 풀어 갈 수 없다. 손뼉이 마주쳐서 나는 소리처럼 그 소리는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사람의 주장이 이겼다고 더라도 승리자는 아니다. 모두 패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양보에서 얻은 승리라면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일수록 , 문화국민일수록 양보가 생활화 되어 있다. 보행중 마주쳤을 때 상대에게 길을 양보한다. 이런 행동은 버스 타는데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다소곳이 머리숙여 양보 했을 때 그 사회는 모난데 없는 흐믓한 사회가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