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사회건 긍정과 부정은 존재한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산이 있으면 내가 있는 것처럼, 긴 것이 있으면 짧은 것이 있으며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정부에서는 술이 아직 반병이 남아 있다고 말하면 국민은 무슨 소리야 반병 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같은 술 반병을 보는 눈은 이같이 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왜 내 의견에 따르지 않느냐고 비난 할 필요는 없다. 그 상치된 의견을 조정하고 조화롭게 중화 시켜 나가는 것이 현실을 사는 슬기인 것이다. 세상이 시끄럽다고 비난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것은 긍정적으로 볼 때 발전의 용트림이기 때문이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도 빚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불에 들어가 연단이 되지 않으면 토기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시끄러운 것은 연단의 기간이다. 정부도 국민도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 들이는 아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만을 판단한 우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민족은 밑에 깔려있는 저력이 능히 이를 극복하고도 남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닥치면 해 내는 민족” 이라고 정의 했다지 않은가. 민주사회는 발달 할수록 발언권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것은 각자의 의식구조가 높아지며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그 뿐인가 먹기 위해 바둥거리던 시대는 지나고 풍요사회가 되다보니 말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는 항상 시끄럽다. 당장 무슨 결단이 날 정도로 위기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한쪽에서는 데모를 하고 한쪽에서는 안정을 해친다고 반대하고 정계는 진보와 보수라고 소용돌이치고 어떻게 보면 뭐가 잘 못된 것인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다른 것이 한 자리에 모여 어울려 살아간다. 사람의 의견도 사람의 모양만큼이나 다를 수 있다. 코끼리의 발을 만진 사람, 배를 만진 사람, 코를 만진 사람, 모두의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코끼리 전체에서 볼 때엔 모두 같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는 소란하지만 궁극에서는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