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훌륭한 교사는 인내라는 말이 있다. 인내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 인내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어쨌든 인내만큼 인생살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실패와 범죄가 바로 인내심의 결핍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은 하나같이 그 원인을 인내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 혁명사를 쓴 카알라일은 7년동안 공 들여 써 놓은 원고가 가정부의 실수로 한줌의 재로 변했을 때 붓을 꺾으려고 몇 번이고 망설이다 다시 붓을 들고 인내로 5년을 원고지와 씨름 끝에 오늘의 유명한 혁명사 2권을 남겨 놓은 것이다. 이때 참지 못하고 붓을 놓았더라면 유명한 명저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발명가 에디슨이 노심초사 6년간을 피나는 연구 끝에 막 성공 했다고 안도의 숨을 쉬던 날 연구실에 불이 나서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이유인즉 기르고 있는 사랑하는 개가 꼬리로 램프를 엎은 것이 화근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개를 크게 욕했을 터인데 다치지 않은 것만 다행이라며 다시 연구에 몰두 드디어 성공 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이 모두 인내가 없이 중도에서 포기 했더라면 오늘의 카알라일도 오늘의 에디슨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내로 얻은 소중한 보물들인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낫다. 솔로몬의 말이다. 노하기를 더디한다는 것은 바로 인내를 말하는 것으로 용감한 용사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의 후회가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이지만 후회를 말할 때는 미미 늦은 때이다.
인생을 포기한 사람, 세상을 등진 참혹한 반항아 그것도 모두 인내의 교훈을 배반한 결과이다. 올림픽 승리의 영예도, 에베레스트 정복의 영광도, 노벨상의 영광도 모두 인내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인내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영광은 그만큼 큰 것이다.
참고 견디는 생활은 재난을 이기고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이런 인내심이 없다면 사람이란 지혜를 스스로 포기하고 동물과의 차이를 없애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인생은 먹고 자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