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지금의 세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도 믿을 수가 없다. 그것은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없어질 수도 있고, 없던 것이 다시 생겨 날 수도 있으니 절대성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 사람의 사고 방식에 따라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가변성은 불확실성과 다를것이 없다.
세상의 삼라만상도 그것을 비춰보는 사람의 마음이 항상 변하고 있으니 가변적일 수 밖에 없다.
보는 눈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중대한 뜻을 가지고 있다. 먼 옛날 그리스의 철학자 둘이 길을 가고 있었다. 얼마만큼 갔을 때 산밑 우두막집에서 어린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였다. 한 철학자가 말한다. 저소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기쁘다고 우는 울음소리라고 했다. 또 한 철학자는 말한다. 아니다 저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슬프다고 우는 울음소리다. 두 철학자의 의견은 이렇게 달랐다. 한 생명의 탄생이 하나는 기쁜것, 하나는 슬픈 것, 이렇게 정 반대의 의견으로 나타난 것이다. 존재는 하나인데 보는 눈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
같은 칼도 쥐고 있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주부의 손에 들려 있으면 식구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요리하는 자애의 칼이 되지만 그 칼이 도적의 손에 들려 있으면 사람을 해칠지도 모르는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칼 자체에 어떤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돈도 마찬가지로 착한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돈은 좋은 돈이 되지만 악인의 손에 들려 있으면 나쁜 돈이 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이치는 지식과 기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것은 소유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불확실성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다.
요즘 일상적인 대화에서 ‘같아요’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것은 단정적인 어투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 날씨가 분명히 화창하고 좋은데도 ‘날씨가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영하 20도의 추운 날도 ‘추운것 같아요’라는 일상의 대화가 하나같이 불확실한 뜻을 가지고 있다. 좋은것 같아요, 나쁜것 같아요, 공부도 잘 하는 것 같아요, 못하는 것 같아요, 이같이 ‘같아요’의 유행은 바로 불확실성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심리적 작용인것 같다.